[녹색환경투데이 = 지호락기자]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K-팝(K-POP)이 이제는 '기후 행동'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대규모 월드투어와 화려한 무대 연출 이면에 존재하는 막대한 탄소 배출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공연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수립 논의가 국회에서 본격화됐다.
지난 12월 2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는 박수현·민형배·김교흥·손솔·김승수·이기헌·김재원·조계원 의원이 주최하고 기후 행동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이 주관한 **<케이팝 저탄소 콘서트 표준화를 위한 공연·행사 탄소중립 가이드라인 수립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 이번 토론회는 K-팝의 글로벌 위상에 걸맞은 환경적 책임을 다하고, 이를 위한 정책적 지원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콘서트가 음악 산업 탄소 배출의 73% 차지... 팬들은 변화를 원한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나연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이너는 K-팝 산업의 성장과 함께 환경적 기회비용을 따져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 캠페이너는 "전체 음악 산업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3%가 콘서트나 페스티벌 등 라이브 공연에서 발생한다"며, 이는 "약 9만 2천 대의 휘발유 승용차가 1년 동안 내뿜는 탄소 배출량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팬들의 인식 변화다. 케이팝포플래닛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2.2%가 "더 많은 저탄소 K-팝 콘서트를 보고 싶다"고 답했으며, 56.3%는 "지금 당장 업계가 저탄소 콘서트로 전환해야 한다"고 응답해 팬덤의 요구가 매우 높음을 시사했다. 김 캠페이너는 "팬들은 이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며 ▲재생에너지 무대 운영 ▲이동 수단 탄소 감축 ▲폐기물 관리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친환경은 경제적 이득"... 콜드플레이·빌리 아일리시 사례 주목
두 번째 발제자인 커트 랭어(Kurt Langer) 뮤직 서스테이너빌리티 얼라이언스(Music Sustainability Alliance) 이사는 해외의 선진 사례를 통해 저탄소 콘서트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는 콜드플레이(Coldplay)와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등의 아티스트들이 태양광 패널, 배터리 시스템, 관객 참여형 발전(키네틱 플로어) 등을 통해 투어의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인 사례를 소개했다.
랭어 이사는 "저탄소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단순한 윤리적 결정을 넘어 똑똑한 비즈니스 전략"이라며, 에너지 비용 절감, 브랜드 충성도 강화, 새로운 스폰서십 유치 등 경제적 효과인 '재무 중대성'을 강조했다.
디젤 발전기 대신 '이동형 ESS' 도입 등 인프라 지원 절실
이어진 토론에서는 현장의 고충과 제도적 개선안이 쏟아졌다. 특히 공연장 전력 공급의 핵심인 '디젤 발전기'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허은 이온어스 대표는 "공연 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디젤 발전기는 다량의 탄소와 미세먼지를 배출한다"며 이를 이동형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대체할 경우 탄소 배출량을 약 73%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 대표는 "전기차 보조금처럼 이동형 ESS 도입에도 보조금 지원 정책이 마련된다면, 적은 예산으로도 훨씬 큰 탄소 감축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정책적 지원을 촉구했다.
김명신 라이브네이션 코리아 팀장은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 당시의 경험을 공유하며 "한국은 관객들의 대중교통 이용률과 재활용 의식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국내에는 공연 전문 베뉴(Venue)가 부족해 야외 공연 시 발전기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인프라 구축의 시급함을 지적했다.
정부·국회 "K-컬처의 지속 가능성 위해 법·제도 뒷받침할 것"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의원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K-팝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박수현 의원은 "문화 분야가 먼저 실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려야 한다"며 입법과 정책 지원을 약속했고,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 소장은 "저탄소 콘서트 표준화는 한국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박혁태 팀장은 "공연·행사 분야에 특화된 탄소 배출 계산기를 개발 중"이라며 "중소 기획사들도 동참할 수 있도록 교육과 인센티브 제공 등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K-팝은 이제 단순한 음악을 넘어 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문화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토론회에서 논의된 가이드라인이 실제 현장에 적용되어, '지구를 살리는 K-팝'이 전 세계 공연 문화의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