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소사본동에는 1000년의 세월을 견딘 생명체가 있다. 부천시 보호수 제1호이자 경기도 지정 보호수인 은행나무다. 이름만 들으면 웅장한 고목의 자태를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막상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인천대공원의 은행나무가 가을이면 황금빛 자태를 뽐내며 수많은 인파를 불러 모으는 것과 달리, 소사본동의 은행나무는 마치 거대한 전봇대처럼 앙상하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야 할 가지들이 모두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원인은 ‘공간 부족’과 ‘민원’이다. 나무는 주택가 한복판, 그것도 다세대 주택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갇혀 있다. 가지가 조금만 뻗으면 주민들은 그늘짐, 낙엽, 은행 악취를 호소한다. 행정 당국은 나무를 살리는 관리보다는 민원을 잠재우기 위한 ‘강전정(강한 가지치기)’을 선택해 왔다. 그 결과, 천년의 위엄은 사라지고 기형적인 모습만 남았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무를 자를 것이 아니라, 나무를 옥죄고 있는 주변 공간을 터줘야 한다. 고양시 등 타 지자체는 보호수 인근 주택을 시 예산으로 매입하여 소공원을 조성, 나무도 살리고 주민 휴식 공간도 확보하는 ‘윈윈(Win-Win)’ 사례를 만들어냈다.

소사본동 은행나무 역시 바로 옆 주택 1~2채를 매입하여 옹벽을 허물고 ‘쌈지공원’을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향후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수형을 회복시킬 수 있다.

1000년 은행나무는 부천의 역사 그 자체다. 흉물스럽게 방치된 나무를 보며 역사를 논할 수는 없다. 부천시는 더 이상 ‘민원 처리’ 수준의 관리가 아닌, ‘문화유산 보존’ 차원에서의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사지가 잘린 나무에게 필요한 것은 가위질이 아니라, 숨 쉴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