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 역곡동 일대의 습지 매립 계획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시는 도시 발전과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매립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들은 습지가 가진 생태적 가치와 기후위기 대응 기능을 강조하며 보존을 촉구하고 있다. 이 갈등은 단순히 한 지역의 개발 문제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습지는 도시의 허파이자 천연 탄소 저장고
습지는 지구 육지 면적의 6%에 불과하지만, 전체 탄소의 30%를 저장하는 '슈퍼 탄소 저장고'다. 산림보다 단위면적당 5배 이상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으며, 한번 파괴되면 축적된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어 기후변화를 가속화한다.
역곡습지는 부천시 서부권의 귀중한 자연 생태 공간이다. 습지는 홍수 조절, 수질 정화, 생물 다양성 보전 등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도시 지역에서 습지는 여름철 폭염을 완화하는 자연 냉방 장치이자, 집중호우 시 빗물을 저장해 침수 피해를 줄이는 천연 저수지 역할을 한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기상 현상이 잦아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습지의 기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매립 후 돌이킬 수 없는 생태계 파괴
습지 생태계는 일단 파괴되면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다.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토양 구조와 미생물 군집, 그리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동식물 생태계는 한번 사라지면 되돌릴 수 없다. 환경부가 지정한 습지보호지역의 경우에도 복원 사례는 극히 드물며, 복원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원래의 생태계 기능을 회복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린다.
역곡습지에는 멸종위기종과 보호종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이자 양서류와 곤충의 서식처인 이곳이 매립된다면, 부천시는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 하나를 영원히 잃게 된다. 이는 단지 환경단체만의 우려가 아니다. 람사르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 등 국제 사회는 습지 보전을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개발 논리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시가 내세우는 개발의 당위성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거 공간 확보와 생활 편의시설 조성이라는 명분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과연 습지를 매립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는가? 부천시에는 이미 개발 가능한 유휴 부지와 재개발이 필요한 노후 지역이 상당수 존재한다. 기존 도심의 효율적 재생과 압축적 개발을 통해서도 충분히 주거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의 도시 개발 패러다임은 '무분별한 확장'에서 '질적 재생'으로 전환되고 있다. 서울 서울숲, 청계천, 그리고 최근 각광받는 용산공원 조성 사례는 생태 공간이 도시 가치를 오히려 높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곡습지를 매립하기보다 생태공원으로 조성한다면, 이는 부천 서부권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어 지역 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
부천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
첫째, 습지 생태계에 대한 정밀한 환경영향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평가를 통해 역곡습지의 생태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매립이 미치는 환경적 영향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둘째, 습지 보존과 지역 발전을 동시에 달성하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습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고, 주변 지역을 친환경 주거단지와 연계 개발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이는 단기적 토지 매각 수익보다 장기적으로 더 큰 경제적, 환경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셋째, 시민 참여형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역곡습지의 미래는 행정과 개발업자의 판단만으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 지역 주민, 환경단체,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거쳐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선택
부천시는 현재 '부천 3.4.5 프로젝트'를 통해 미래 도시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미래 도시는 콘크리트 건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깨끗한 공기와 물, 푸른 숲과 습지, 그리고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는 공간이 있어야 시민들이 진정으로 살고 싶은 도시가 된다.
2030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부천시가 정작 탄소 저장의 핵심 공간인 습지를 매립한다면, 이는 모순이다. 역곡습지는 한번 사라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자연 자산이다. 개발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생태계는 한번 파괴되면 영원히 복구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세대의 선택이 미래 세대가 물려받을 부천의 모습을 결정한다. 역곡습지 매립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개발과 보존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녹색환경투데이 이영수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