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늘 말없이 순환의 의미를 지니고 오고 간다. 보도블럭 위로 떨어진 갈색 플라타나스 낙엽이 부는 바람에 서걱댄다. 바람은 동요[動搖]를 강요하지만 시간은 부동[不動]의 흐름일 뿐이다. 지난 여름 무더위도 기억으로 가고, 어느새 입동[立冬]이 문 앞에 와 있다. 옷깃을 여미는 겨울이 다가온다. 서리[霜降]와 눈[小雪] 사이의 징검다리가 놓여지는 시간이다.

중국에서는 입동 후 5일씩 나누어 삼후[三候]라고 하여, 초후[初侯]에는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에는 땅이 얼기 시작하며, 꿩이 보이지 않는 말후[末候]로 나누기도 했다. 이미 벼베기는 끝나고 겨울 준비로 들녘은 분주하다. 단풍은 아름답지만 곧 낙엽으로 내려앉는다. 어린 시절 지금쯤엔 무와 배추를 거두어들이고, 볏짚을 마당에 쌓아 소먹이를 준비했던 일들이 아스라하다. 겨우내 볏짚을 썰어 새벽마다 소죽을 쑤는 일이 내몫이던 추억도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기억의 저편이다.

입동에 생각나는 치계미[雉鷄米]를 아는지. 미풍양속으로 알려진 이 풍속은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자대로 꿩과 닭 그리고 쌀은 겉으로 나타난 뜻이고, 숨은 의미는 옛날 사또의 밥상에 올리는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이었다는 것이다. 마을의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시작된 아름다운 양노[養老]와 공경[恭敬]의 발로였다고 전한다.

요즘 세간에는 지위와 권력을 이용한 뇌물로 시끄럽다. 일반인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상도 그렇지만 수법도 대담하고 악독[惡毒]하다. 보기 흉한 국정조사를 시청하고 있자면 ‘쭉정이’와 ‘속임수’가 겹쳐지는 건 분명 불행이다. 쭉정이는 속이 빈 것이고, 속임수는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회의 악[惡]이고 공공의 적이다. 그나마 속이 빈 건 피해는 주지 않으니 천만다행(?)이다.

때를 알고 지는 낙엽도 한 시절 신록[新綠]으로 하늘을 향해 분주했으리라. 이제 땅으로 숨어드는 생물들은 또 다른 시간으로 오는 봄을 준비하고 애써 기다림을 갖는다. 기억을 되새기고 추억을 곱씹으면 남아있을 아쉬움은 민낯으로 다가온다. 하여, 입동은 반성과 성찰로 향하는 내일에의 고귀한 등대이고 도약의 선물이 될 것이다.

과연, 고도孤島는

어디서 무얼하는지

귓가에 머무는

어제는 잘 갔는지

아침이 오는 길목으로

내일이 얼굴을 내미는

그대는,

과연, 또

무엇일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