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대신 컵값 따로 받습니다" 달라지는 카페 풍경
[녹색환경투데이] 이영수기자 = 정부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사실상 폐지하고, 소비자가 컵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컵값 따로 계산제'를 도입한다. 이와 함께 지난 2023년 철회됐던 '매장 내 종이컵 사용 금지' 규제도 대형 음식점부터 단계적으로 부활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 김성환)는 17일 이재명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추진 방향을 보고했다. 이번 대책은 기존 규제의 실효성 논란을 잠재우고, 시장 가격 기제와 산업계의 자발적 동참을 유도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 보증금제 대신 ‘수익자 부담 원칙’… 컵값 100~200원 별도 청구
김성환 장관은 이날 보고에서 "현행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소비자의 반환 불편과 소상공인의 라벨 부착 업무 부담 등 '이중고'를 유발했다"고 진단하며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새로 도입되는 가칭 '컵 따로 계산제'는 음료 가격에 포함되어 있던 컵 가격을 분리해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방식이다. 소비자가 일회용컵을 요구할 경우 100~200원의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며, 이는 영수증에 별도로 표기된다. 반면, 텀블러나 다회용컵을 지참하면 해당 금액만큼 할인을 받게 된다.
기후부는 컵의 생산원가와 프랜차이즈 공급가를 고려해 최저 가격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방침이다. 이는 컵 회수에 초점을 맞춘 기존 보증금제와 달리, 일회용품 사용 자체에 가격 장벽을 세워 사용량을 줄이겠다는 '감량(Reduce)' 중심의 정책으로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재사용이 가능한 유리병과 달리 일회용 컵에 보증금을 적용한 것은 현장과 괴리된 측면이 있었다"며 제도의 유연한 개선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제도는 법 개정과 시스템 구축 기간을 고려해 이르면 2027년 말 시행될 전망이다.
◇ 종이컵·빨대 규제 다시 죈다… '오락가락 행정' 비판도
윤석열 정부 당시 완화됐던 일회용품 규제도 다시 강화된다. 기후부는 식당 내 종이컵 사용을 대형 매장부터 단계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2023년 11월 규제 철회 이후 약 2년 만의 정책 부활이다.
플라스틱 빨대 역시 '원칙적 금지'로 돌아선다. 매장에 빨대를 비치하지 못하도록 하고, 노약자나 장애인 등 필수적인 경우에만 고객 요청 시 제공하도록 지침을 변경한다.
김 장관은 "정책 신뢰도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실현 가능한 감축 수단을 다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으나, 잦은 정책 변경으로 인한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산업계 '재생원료 의무화' 본격 시동… 페트병 10% 이상
플라스틱 제조 및 유통 단계의 관리도 대폭 강화된다. 당장 내년부터 연간 5천 톤 이상의 페트병을 사용하는 대형 생수·음료 제조사는 제품 생산 시 재생원료를 10% 이상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의무 사용 비율은 2030년까지 30%로 상향되며, 적용 대상 기업도 2028년까지 연간 1천 톤 이상 생산 업체로 확대된다.
이를 위해 기후부는 17일 서울아리수본부, 한국수자원공사 등 8개 수도사업자와 협약을 맺고 공공부문 병입 수돗물부터 재생원료 사용을 선도하기로 했다. 또한 제품 설계 단계부터 재활용 용이성을 고려하는 '한국형 에코디자인(K-Eco Design)' 규정을 도입해 플라스틱 발생량을 원천 감축할 계획이다.
◇ 환경단체 "정책 후퇴" vs 소상공인 "비용 부담"
이번 발표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제주에서 회수율 70%를 넘기며 성과를 보였던 보증금제를 포기하는 것은 명백한 '정책 후퇴'라는 지적이다.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는 "가격 내재화만으로는 플라스틱 감축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국제적인 탈플라스틱 흐름에 역행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2024년 부산에서 열린 플라스틱 국제협약(INC-5) 당시에도 한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반면 소상공인들은 종이컵 사용 금지 부활에 따른 인건비 및 세척 시설 설치 비용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일회용컵 별도 계산제 역시 결국 손님과의 실랑이는 점주 몫이 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지원책 마련을 촉구했다.
기후부는 오는 23일 공청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초안을 공개하며 각계 의견 수렴에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