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환경투데이 = 이영기자] 부천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분야는 단연 도로·수송 부문이다. 향후 10년간 약 7,800억 원 이상이 전기·수소차 보급과 충전 인프라 구축에 집중된다. 이는 전체 감축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다. 문제는 이 정책이 '차량의 종류'만 바꾸고, '교통 구조'는 그대로 둔다는 점이다.
■ 부천시 교통,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
부천시는 수도권 대표적인 생활·통근 도시다. 시 전체 면적이 53.44㎢에 불과하지만, 하루 평균 통행량은 수도권 상위권에 속한다. 출퇴근 시간대 주요 간선도로는 정체가 일상화되어 있고, 3km 이내 단거리 이동에도 자가용 이용 비율이 높은 구조를 보인다.
문제는 이 같은 교통 구조가 탄소배출뿐 아니라 도시 공간 활용, 시민 건강, 교통안전 등 복합적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주차난은 심화되고,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은 위협받으며, 도로는 끊임없이 확장을 요구받는다.
■ "차를 친환경으로 바꾸면, 문제가 해결될까"
이 상황에서 전기차 보급은 배출가스를 줄일 수는 있어도, 교통 혼잡·도로 확장·주차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전기차도 도로 공간을 차지하고, 주차면을 필요로 하며, 출퇴근 시간대 정체를 만드는 건 마찬가지다.
녹색환경연합중앙회 부천지부는 이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탄소중립 교통정책의 핵심은 '어떤 차를 타느냐'가 아니라 '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2030 탄소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전기차 전환과 함께 '도시 내 자가용 통행량 50% 감축'을 병행 추진하고 있다. 파리는 도심 주차 공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자전거 도로를 3배 확대했으며, 암스테르담은 2025년까지 도심 내 휘발유·디젤 차량 진입을 전면 금지한다.
■ 기본계획의 한계: '수요 관리'와 'TOD'는 뒷전이다
부천시 기본계획에는 전기차 보급 목표, 충전소 확충 계획은 상세히 담겨 있다. 하지만 교통 수요 관리 정책과 도시 구조 전환 전략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다.
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도로·수송 부문 예산 중 전기·수소차 보급 및 인프라 구축에 약 92%가 배정된 반면, 보행·자전거 인프라 개선, 대중교통 연계 강화, 주차 수요 관리 등에는 8% 미만이 책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다음과 같은 핵심 정책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역세권 중심의 TOD(대중교통 중심 개발) 전략
도심 주차 수요 관리 및 요금 현실화
차로 축소(도로 다이어트)를 통한 보행·자전거 공간 확대
학교·상업지역 중심 차 없는 거리 조성
출퇴근 시간대 자가용 이용 억제 정책
한국교통연구원은 "전기차 전환만으로는 2030년 이후 교통 부문 감축 목표 달성이 어렵다"며 "차량 대수가 유지되거나 증가할 경우, 탄소 감축 효과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 바 있다.
■ 대중교통 중심 도시 구조로의 전환, TOD
부천시가 '차 없이도 편리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TOD(Transit-Oriented Development, 대중교통 중심 개발) 정책을 본격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TOD는 역세권 반경 500m 이내에 주거·상업·업무 시설을 고밀도로 복합 개발해, 시민이 대중교통만으로 일상생활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계획 기법이다. 통근·통학·쇼핑이 모두 도보 10분 이내에서 가능한 '15분 도시' 개념과 맥을 같이한다.
서울시는 2020년부터 주요 역세권을 TOD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해 주차장 최소 기준을 완화하고 보행 중심 개발을 유도하고 있다. 홍대입구역·강남역·잠실역 일대가 대표적이다.
부천시는 7호선, 1호선 등 광역철도망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역세권은 여전히 자가용 중심 구조다. 소사역·부천역·중동역·상동역 주변은 대형 주차장과 저층 단독주택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도 대중교통 접근이 불편한 구조가 반복된다.
녹색환경연합중앙회 부천지부 관계자는 "부천시 탄소중립 계획에 전기차 보급만큼 TOD 기반 도시 재구조화 전략이 포함되어야 한다"며 "역세권을 중심으로 직주근접형 생활권을 조성하면 통행 거리 자체가 줄어 탄소 감축 효과가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본 도쿄는 TOD 정책을 통해 자가용 통행 분담률을 12%까지 낮췄으며, 홍콩은 철도 중심 개발로 대중교통 분담률 90%를 달성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Finger Plan'을 통해 철도역 중심으로 도시를 확장하면서 자전거 통행 분담률 62%를 기록하고 있다.
■ 시민의 선택을 바꾸는 교통정책이 필요하다
시민에게 희생을 요구하기 전에, 시가 먼저 대안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차를 타지 않는 것이 더 편한 구조를 만들어야 시민의 선택이 바뀐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
역세권 TOD 특별계획구역 지정: 소사역·부천역·상동역 등 주요 역세권을 TOD 구역으로 지정하고, 주차장 최소 기준 완화, 용적률 상향, 복합용도 개발 인센티브 부여 등을 통해 대중교통 중심 생활권을 조성해야 한다.
보행·자전거 이동이 빠르고 안전한 도로: 주요 생활권과 역세권을 연결하는 자전거 전용도로 네트워크 구축, 보행자 우선 신호체계 도입, 스쿨존 차량 속도 제한 강화 등이 시급하다.
대중교통 환승이 쉬운 생활권 구조: 마을버스-지하철-광역버스 간 환승 시간 단축, 환승 요금 할인 확대, 출퇴근 시간대 배차 간격 단축이 필요하다. 특히 소사역처럼 환승 인프라가 부족한 역세권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주차 공간 축소와 요금 현실화: 도심 노상 주차면 단계적 축소, 주차 요금 현실화를 통한 자가용 이용 억제, 공영주차장의 공원·휴게공간 전환이 검토되어야 한다.
학교·상업지역 중심 차 없는 거리 확대: 등하교 시간대 차량 통제, 주말 상업지역 보행자 전용거리 운영 등이 가능하다.
수원시는 2023년부터 '그린 모빌리티 존'을 지정해 도심 내 자가용 진입을 단계적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서울 여의도는 주말 차 없는 거리 운영으로 보행 통행량이 3배 증가했다.
■ 교통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전환'이다
녹색환경연합중앙회는 "부천시가 전기차 보급 중심 정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TOD 기반 도시 재구조화와 교통 수요 관리, 친환경 전환이 결합된 통합 정책으로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시적 불편이 따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더 편리하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도시로 가는 과정이다. 탄소중립은 '불편함 없는 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천시의 탄소중립은 단순히 차량 연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차 없이도 편리하게 살 수 있는 도시로의 전환이어야 한다. 그 전환의 시작은 역세권 중심의 도시 재구조화와 2025년 교통정책 예산 재편성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