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환경투데이 = 편집위원회]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지만, 그 과정은 결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에너지 요금 인상, 내연기관차 퇴출, 노후 건물 규제는 하루하루가 벅찬 취약계층과 영세 소상공인에게는 '생존의 위기'로 다가온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는 탄소중립의 필수 전제조건으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을 꼽는다.
부천시가 최근 확정한 『제1차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2025~2034)』은 이러한 고민을 담아 '정의로운 전환'을 8대 추진 부문 중 하나로 명시했다. 그러나 화려한 선언 뒤에 숨겨진 예산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들여다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 부천시의 약속: "소외되는 시민·기업 없게 하겠다"
본지가 입수한 기본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부천시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 설치·운영 ▲중소기업 사업전환 컨설팅 지원 ▲제도적 기반(조례) 마련 등 3가지를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특히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피해가 예상되는 관내 금속가공 및 플라스틱 제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업종 전환을 돕고,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낼 전담 기구(지원센터)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또한, 건물 부문 세부사업으로 ▲취약가구 차열페인트(쿨루프) 도장 지원 ▲저소득층·사회복지시설 LED 교체 ▲공공건축물 그린리모델링 등을 포함시켜 에너지 복지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담았다.
■ 1조 6천억 중 '대응 기반' 예산은 0.06%뿐… "균형 잃었다"
문제는 '돈'이다. 계획의 진정성은 결국 예산 배정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재정투자 계획을 분석한 결과, 향후 10년간 투입될 총예산 1조 6,245억 원 중 도로·수송(약 7,886억 원)과 폐기물(약 4,213억 원) 등 시설·인프라 부문에 막대한 예산이 쏠려 있다.
반면, 정의로운 전환과 교육·소통 등이 포함된 '기후위기 대응기반 강화대책' 분야의 10년 치 예산은 고작 9억 8천만 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전체 예산의 **0.06%**에 불과한 수치다. 취약계층 보호와 피해 산업 지원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생색내기용' 예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녹색환경연합중앙회 관계자는 "탄소중립은 환경 정책이지만, 동시에 복지·경제 정책이어야 한다"며 "인프라 구축에만 수천억을 쏟아붓고, 정작 전환 과정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예산이 이토록 빈약하다면 그 정책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 '보상' 넘어 '참여'로… 시민이 에너지 생산 주체 돼야
정의로운 전환은 단순히 피해를 보상하는 차원을 넘어, 시민을 녹색 경제의 주체로 세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부천시 계획에는 '시민주도형 신재생에너지 전환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시민이 에너지 협동조합 등에 출자하여 태양광 발전 수익을 공유하는 모델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모델을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공공임대주택 옥상을 활용한 태양광 발전 이익을 입주민 관리비 절감으로 연계 ▲노후 주택 밀집 지역의 집수리 사업과 그린리모델링의 결합 ▲탄소중립 관련 지역 일자리(그린 잡) 창출과 교육의 연계 등이 그 대안이다.
■ "불편함 감수할 준비 돼 있다, 단 공정하다면"
녹색환경연합중앙회는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으로 **'사회적 합의'**를 강조한다. 갈등을 숨기기보다 드러내고, 부담을 공정하게 나누는 공론화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시민들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그 부담이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전가되지 않고 공정하게 나뉘어야 한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부천시가 선언한 '정의로운 전환'이 보고서 속의 문구로만 남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취약계층과 피해 산업을 위한 과감한 예산 재배정과 구체적인 보호 장치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