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조 투자 vs 환경·균형발전, 첨예한 대립

경기 용인시에 조성 중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둘러싼 이전 논란이 새해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6일 "용인의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입주하면 전기 사용량이 원전 15기 수준인 15GW에 달한다"며 전력이 풍부한 지역으로의 이전 검토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에 용인시와 정치권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이상일 용인시장은 지난해 12월 31일 기자회견에서 "이미 1000조원 규모의 투자가 확정됐고, 보상·인허가·기반시설 구축이 동시에 진행 중인 나라의 명운이 걸린 중대 프로젝트"라며 "반도체는 속도와 집적이 생명인데, 이전 주장은 국가 미래를 망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원삼면에서 126만평 규모 클러스터 1기 팹 골조공사를 진행 중이며,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19일 LH와 235만평 부지 매입 계약을 체결하고 22일부터 토지 보상 협의에 착수한 상태다.

환경단체, "수도권 집중·탄소중립 위배" 행정소송 제기

환경단체들은 용인 반도체 산단이 환경과 지역 균형발전 측면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지난해 7월 그린피스와 경기환경운동연합, 시민 소송인단 450명은 산업통상자원부를 상대로 'LNG 발전소 허가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내 LNG 발전소 6기 신설이 환경영향평가와 기후변화영향평가 없이 허가됐다는 것이 소송의 핵심이다.

지난해 3월에는 경기환경운동연합과 기후솔루션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국가산단 계획 승인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용인시 주민 5명을 포함한 16명이 원고로 참여한 이번 소송에서는 산단 가동을 위해 2050년까지 최대 10GW의 추가 전력이 필요한데, 이는 수도권 전력 수요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라고 지적했다.

김석연 변호사는 "기후위기 시대에 석탄을 LNG로 대체하는 것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의무화한 탄소중립기본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발전사업을 먼저 허가한 뒤 환경영향을 평가하는 현재의 제도는 이미 결정된 사업을 정당화하기 위한 요식절차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비수도권은 전력 식민지 아니다"...전국 단위 연대 확산

지난해 10월 15일에는 환경운동연합, 전북송전탑건설백지화전북대책위 등 전국 50여개 환경·시민단체와 송전탑건설 반대 주민대책위가 대통령실 앞에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과 초고압 송전선 건설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환경운동연합 안재훈 사무총장은 "전기·물 대책 없이 발표된 용인 반도체국가산단을 위해 LNG 발전소 6기와 장거리 송전을 늘리는 계획은 지역불균형과 사회적 갈등을 키운다"며 "장거리 송전 최소화와 분산에너지 전환이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송전탑반대 지역대책위는 "비수도권은 수도권을 위한 '전력 식민지'가 아니다"라며 "초고압 송전선이 관통하는 지역의 건강 우려, 경관 훼손, 지가 하락, 공동체 갈등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단체들은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수도권 일극 집중을 심화시키고 비수도권을 '전력 식민지'로 고착하는 것"이라며 "반도체 산업단지가 필요하다면, 재생가능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호남지역으로 입지를 재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 경쟁력 vs 환경·균형발전, 해법은?

반도체 산업계와 일부 전문가들은 환경단체의 주장에 대해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용인이 기흥·화성·평택(삼성), 이천(SK하이닉스), 판교(팹리스) 등 기존 반도체 벨트의 중심에 위치해 소재·부품·장비 기업, 연구 인력, 협력사가 집적된 최적의 입지라는 것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가 클러스터는 전력만 충분하다고 성공하는 사업이 아니다"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대규모 용수, 그리고 숙련된 인재가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대규모 화석연료 발전 증설과 장거리 송전선 건설을 동반하는 개발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선임 캠페이너는 "국가산단 내 6기의 신규 LNG 발전소 건설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기후위기 대응과 국가 경제를 위해서 정부가 추진하려는 RE100 산단의 첫 단추는 용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용인 국가산단 재검토 요구 모임 활동가 김춘식 시민은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도 없이, 다른 지역의 노후 발전소 용량을 용인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 지역 주민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6년, 정부의 명확한 입장 표명 필요

이번 논란은 국가 산업 정책, 지역균형발전, 환경보호, 에너지 전환 정책이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환경단체들은 ▲용인 반도체국가산단의 전력계통 안정성, 재생에너지 사용 및 경제성을 바탕으로 한 재검토 ▲송전망 건설과 용인 산단 입지 문제에 대한 공론화 즉각 착수 ▲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 및 재생에너지 기반 RE100 산단으로 첨단산업 재배치 등을 촉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산업 경쟁력 확보와 환경·균형발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환경정책 전문가는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은 인정하되,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공급, 분산형 에너지 체계 구축, 철저한 환경영향평가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환경부 장관의 발언으로 촉발된 논란에 대해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환경단체들과 법원의 판결이 주목되는 가운데, 새해 들어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녹색환경투데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