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말부터 시행된 투명 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제도를 두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시민들이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투명 페트병을 따로 분리배출하지만, 재활용 선별장에서는 결국 광학선별기(NIR, Near-Infrared) 등 자동화 장비로 다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기계가 분류하는데 왜?"

서울과 수도권 주요 재활용 선별시설에는 NIR 광학선별기가 설치되어 있다. 이 장비는 적외선을 이용해 플라스틱 재질을 자동으로 구분하며, 투명 페트(PET)와 유색 페트, 기타 플라스틱을 정확하게 분류할 수 있다.

한 재활용업체 관계자는 "NIR 장비는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미세한 재질 차이까지 판별한다"며 "투명 페트병이 일반 플라스틱과 섞여 들어와도 기계가 자동으로 분리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시민들에게 분리배출 부담을 주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실정이다. 한 아파트 주민은 "라벨 떼고, 헹구고, 따로 버리는 수고를 하는데 어차피 기계가 분류한다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사전 분리가 재활용 품질 높인다"

그러나 환경부와 재활용업계는 투명 페트병 별도 배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광학선별기가 있어도 사전 분리배출이 중요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선별 효율성이다. 재활용 선별장에는 하루 수십 톤의 폐기물이 반입된다. 투명 페트병이 사전에 분리되어 들어오면 선별 공정의 부담이 줄어들고, 처리 속도가 빨라진다. 한 선별장 운영자는 "혼합 배출되면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다양한 재질이 뒤섞여 선별기 오류율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둘째, 오염도 감소 효과다. 투명 페트병을 별도로 배출하면 다른 플라스틱에서 나오는 이물질이나 잔류물로 인한 오염을 막을 수 있다. 특히 식품용기로 재활용되기 위해서는 높은 순도가 필수적인데, 사전 분리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셋째, 선별 장비가 없는 중소 선별장도 많다. 전국 400여 개 재활용 선별시설 중 NIR 장비를 갖춘 곳은 대형 시설 위주로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장비가 없는 선별장에서는 수작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사전 분리배출이 더욱 중요하다.

광학선별기의 한계

NIR 광학선별기도 만능은 아니다. 라벨이 붙어있거나 내용물이 남아있는 페트병, 찌그러진 페트병은 선별 정확도가 떨어진다. 특히 다층 라벨이나 전면 인쇄된 페트병은 적외선이 제대로 투과하지 못해 오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재활용업계 전문가는 "광학선별기 인식률이 보통 8590% 수준"이라며 "나머지 1015%는 수작업으로 재선별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비용과 시간이 추가로 소요된다"고 말했다.

또한 장비 도입·유지 비용도 만만치 않다. NIR 선별기 한 대 가격은 수억 원에 달하며, 정기적인 유지보수도 필요하다. 영세한 재활용업체들은 투자 여력이 없어 여전히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제도 개선 방향은?

전문가들은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제도와 자동화 선별 기술을 대립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 관계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환경정책 연구자는 "시민의 사전 분리배출과 선별장의 자동화 기술이 결합될 때 최상의 재활용 효율이 나온다"며 "다만 시민들에게 제도의 취지와 효과를 명확히 설명하는 소통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개선 방안으로는 ▲생산 단계에서 라벨 없는 페트병 확대 ▲선별 장비 인식률 향상을 위한 기술 개발 ▲중소 선별장 장비 지원 확대 ▲시민 대상 제도 취지 재교육 등이 제시된다.

순환경제의 시작점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제도는 단순히 쓰레기를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고품질 재생 원료를 확보하기 위한 순환경제의 출발점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내 재생 페트 시장이 성장하려면 깨끗하고 균질한 원료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며 "시민의 분리배출, 선별장의 자동화 기술, 재생업체의 고도화 기술이 모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활용 선별기가 발전하고 있다고 해서 시민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과 시민 참여가 함께 발전할 때, 진정한 의미의 자원 순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