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환경투데이 = 편집국] “사과 한 알 먹기가 겁난다.” 최근 장을 보는 주부들의 한결같은 탄식이다. 한때 ‘국민 과일’이었던 사과는 이제 ‘금(金)사과’로 불린다. 단순히 물가가 오른 탓일까? 전문가들은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지구가 보내는 ‘기후 경고장’이다.

기후변화가 우리의 식탁을 공격하고 있다. 꿀벌이 사라져 열매가 맺히지 않고, 뜨거워진 한반도에서는 농작물의 재배 지도가 뒤바뀌고 있다. 기후(Climat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이 합쳐진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의 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꿀벌이 사라져 텅 비어버린 양봉 농가의 벌통(생성 이미지)

윙윙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꿀벌의 침묵

지난해부터 전국 양봉 농가에서는 꿀벌 수백억 마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이 발생했다. 원인은 명확하다. 이상 기후다.

겨울철 이상 고온으로 봄이 온 줄 알고 일찍 깨어난 꿀벌들이 갑작스런 한파에 얼어 죽거나, 변덕스러운 날씨로 면역력이 약해져 응애(해충) 피해를 입은 것이다. 문제는 꿀벌의 실종이 꿀을 못 먹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100대 농작물의 71%가 꿀벌의 수분(수정)에 의존한다. 꿀벌이 없으면 딸기, 참외, 호박 같은 과채류는 물론, 축산 사료가 되는 작물도 생산할 수 없다. 꿀벌의 위기는 곧 식량 생산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도 멸망한다”던 아인슈타인의 경고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사과는 강원도로, 제주엔 망고… 흔들리는 ‘농업 지도’

한반도의 기온 상승 속도는 세계 평균보다 빠르다. 이로 인해 수십 년간 고정되어 있던 ‘농산물 주산지 지도’가 급격히 바뀌고 있다.

대구와 경북의 상징이었던 사과는 이제 강원도 정선, 양구, 철원 등 휴전선 인근까지 북상했다. 반면 제주도의 전유물이었던 바나나, 망고, 패션후르츠 같은 아열대 작물은 내륙 지방 곳곳에서 재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작물을 먹게 되어 좋다’는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급격한 기후 변화는 농작물의 생육 리듬을 깨뜨린다. 개화기에 닥친 냉해, 수확기에 쏟아지는 폭우, 그리고 살인적인 폭염은 농산물 생산량을 들쭉날쭉하게 만든다. 공급이 불안정하니 가격은 널뛸 수밖에 없다. 우리가 겪고 있는 ‘채소값 폭등’과 ‘과일값 고공행진’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기후위기가 만든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

밥상의 위기는 곧 생존의 위기

기후플레이션은 식탁의 양극화를 불러온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부유층의 전유물이 되고, 저소득층은 가공식품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식량 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는 더욱 취약하다. 전 세계적인 이상 기후로 곡물 생산량이 줄어들면, 돈을 주고도 식량을 사오지 못하는 ‘식량 안보’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이제 농업은 단순히 먹거리를 생산하는 산업을 넘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최전선이 되어야 한다. ▲기후 적응형 품종 개발 ▲스마트팜을 통한 정밀 농업 확대 ▲저탄소 농법 도입 등 체계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소비자들 또한 ‘못생긴 농산물(흠집 사과 등)’ 소비에 동참하고, 탄소 발자국이 적은 로컬푸드를 애용하는 등 식탁 위의 실천이 필요하다. 밥상은 생명이다. 기후를 지키지 못하면, 우리의 밥상도 지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