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전국 의무 시행을 사실상 폐기하고 '컵 따로 계산제'로 전환한다. 2027년부터 카페 등 식품접객업소에서 일회용컵을 무상으로 제공할 수 없게 되며, 영수증에 컵값을 별도로 표시해야 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12월 17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소비자와 판매자가 모두 불편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컵 따로 계산제'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26년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2027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영수증에 컵값 표시… "가격 인상 아니다"
컵 따로 계산제는 음료 가격에 포함되어 있던 일회용컵 비용을 영수증에 별도로 표시하는 제도다. 현재 테이크아웃 음료값에는 원재료, 인건비와 함께 일회용컵 가격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를 명시적으로 표시하지 않고 있다.
기후부는 컵값을 100~200원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매장이 자율적으로 설정하되 생산원가를 반영한 최소 가격을 정부가 제시할 방침이다. 개인 컵(텀블러)을 가져오면 그만큼 할인하는 방식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
기후부는 "현재도 지불 중인 일회용컵 구매 비용을 따로 밝혀서 알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가격 인상 요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소비자가 일회용컵 사용에 따른 비용을 인식하게 되면 다회용컵 사용 유인이 강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보증금제 실패의 대안… 지자체 자율 시행 길은 열어둬
이번 제도는 제주와 세종에서 시행 중인 보증금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설계됐다. 보증금제는 라벨 부착, 고객 응대, 별도 보관공간 마련 등 소상공인의 이행 부담이 컸고, 과다한 운영비용 대비 효과도 저조했다.
다만 정부는 제도를 전면 삭제하는 대신, 제주특별자치도와 같이 제도가 정착된 지역이나 지자체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조례를 통해 자율적으로 보증금제를 유지·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2025년 11월 기준 보증금제 매장 참여율은 33.1%, 컵 반납률은 52.5%에 그쳤다. 컵 반환율은 2023년 10월 73.9%까지 올랐으나 2024년 6월 44.3%로 급락했고, 이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기후부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소상공인 부담을 줄이면서도 다회용컵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대안"이라며 "일회용컵 재활용 촉진을 위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적용도 병행 추진한다"고 밝혔다.
실효성 논란과 현장 우려
하지만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영수증 항목 외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어 일회용컵 사용 감소로 이어질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일부 소비자단체는 "3800원짜리 아메리카노에 일회용컵값 200원이 더 붙어 4000원에 판매될 가능성이 높다"며 가격 인상을 우려하고 있다. 카페 사장들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장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의 일환
컵 따로 계산제는 정부의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의 핵심 정책 중 하나다. 기후부는 지난 12월 23일 국회에서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대국민 토론회'를 열고, 2030년까지 폐플라스틱 배출량을 전망치(1012만톤) 대비 30% 이상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와 함께 ▲플라스틱 일회용컵 EPR 대상 포함 ▲빨대는 소비자 요청 시에만 제공 ▲플라스틱 폐기물 부담금 단계적 인상(현행 kg당 150원→EU 수준 600원) ▲장례식장 내 일회용품 감량 등의 정책도 추진된다.
기후부는 "음료 가격에의 영향, 실제 감량 효과 등 제기되는 우려사항을 면밀히 검토하여 소상공인과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정책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정교한 제도 설계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