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환경투데이=편집국] 유럽연합(EU)이 야심 차게 추진한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 PPWR)이 2025년 2월 11일 공식 발효되면서, 글로벌 플라스틱 순환경제 체제 전환의 신호탄이 올랐다. 18개월의 전환기간을 거쳐 2026년 8월 12일부터 본격 시행되는 이 규정은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EU 시장에 진출하는 모든 기업의 포장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꿀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고 있다.

지침에서 규정으로, 강제력 대폭 강화

PPWR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지침(Directive)'에서 '규정(Regulation)'으로 법적 형식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1994년 제정된 포장 지침(94/62/EC)은 목표와 의무만 제시하고 구체적 이행 방법은 회원국 재량에 맡겼다. 이로 인해 독일의 듀얼 시스템, 프랑스의 생산자책임재활용(EPR) 방식 등 회원국마다 상이한 제도가 운영되며 기업들은 국가별로 다른 규제를 준수해야 하는 부담을 안았다.

반면 규정은 EU 전역에서 직접 적용되며 국내법 전환 절차가 불필요하다. 27개 회원국 모두에서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어, 포장재 라벨링, 재활용 가능성 설계, 재생원료 함량 등에 대한 통일된 규칙이 마련된다. 이는 역내 단일시장 구축이라는 EU의 전통적 목표와도 부합하지만, 동시에 기업의 선택 여지를 대폭 축소하는 강력한 규제 수단이기도 하다.

2030년까지 모든 포장재 재활용 가능하도록

PPWR의 핵심 목표는 명확하다. 2030년까지 EU 시장에 출시되는 모든 포장재가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식으로 재활용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규정은 2028년 1월 1일까지 유럽위원회가 '재활용을 위한 설계(Design for Recycling, DfR)' 기준과 재활용 성능 등급을 위임법령으로 채택하도록 명시했다. 2030년 1월 1일부터는 모든 포장재가 이 DfR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플라스틱 포장재의 경우 재생원료 의무 사용 비율이 단계적으로 상향된다. 2030년과 2040년 목표치가 설정되어 있으며, 이는 버진 플라스틱 사용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재활용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의도다. 또한 2025년까지 1인당 연간 경량 비닐봉지 소비량을 40개 이하로 제한하며, 위생이나 식품 손실 방지용을 제외한 초경량 봉지는 금지된다.

일회용 포장재 퇴출과 재사용 시스템 구축

2030년부터는 부록 V에 명시된 특정 형태의 포장재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호텔 미니 샴푸 용기, 과일·채소용 비닐 포장, 택배 상자 내 과도한 충진재 등 불필요한 일회용 포장재가 주요 타겟이다. 소형 경량 포장재, 빈 공간 없는 설계 등 포장재 최소화 원칙도 도입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보증금 환급 제도(Deposit-Return System, DRS)의 의무화다. 2029년까지 모든 회원국은 일회용 플라스틱 또는 금속 음료 용기에 대한 DRS를 구축해야 하며, 이미 높은 별도 수거율을 달성한 국가는 예외가 인정된다. 독일에서는 이미 일상화된 제도지만, 많은 회원국에서는 새로운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과제다.

재사용(Reuse) 촉진도 PPWR의 중요한 축이다. 특정 포장 범주에 대해 재사용 목표치가 의무화되며, 리필 가능한 용기 개발이 권장된다. 이는 단순히 재활용을 넘어 포장재 사용 자체를 줄이려는 상위 단계의 순환경제 전략이다.

PFAS 등 유해물질 규제 강화

PPWR은 식품 포장재 내 과불화화합물(PFAS) 함유를 엄격히 제한한다. 2026년 8월 12일부터 표적 분석 기준 PFAS 25ppb 이상, 총 PFAS 250ppb 이상 함유 식품 포장재의 시장 출시가 금지된다. 이는 유럽화학청(ECHA)의 보편적 PFAS 제한 제안과 일치하지만, ECHA의 제안보다 훨씬 빠르게 발효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존 포장 지침의 중금속(납, 카드뮴, 수은, 6가 크롬) 제한도 유지되며, 4개 중금속 합계 농도는 포장재 또는 포장 구성요소당 100mg/kg을 초과할 수 없다. 2026년 12월 31일까지 유럽위원회는 ECHA와 협력하여 포장재 내 우려물질(Substances of Concern, SoC) 보고서를 작성하고, 재사용이나 재활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물질 목록을 확정할 예정이다.

디지털 라벨링과 투명성 강화

포장재 라벨링 요구사항도 대폭 강화된다. 2028년 8월부터는 EU 전역에서 통일된 재활용 기호가 사용되며, 제조업체 및 수입업체 식별 정보, 제품 유형, 로트 번호 등 추적성을 보장하는 정보가 의무 표기된다. 일부 환경 정보는 QR 코드 등 디지털 방식으로 제공되어,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혼란스러운 라벨과 복잡한 색상 체계를 정리하여 쓰레기 분리수거를 용이하게 만들려는 조치다. 소비자는 포장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어떻게 재사용을 위해 반납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게 된다.

전자상거래 기업의 부담 가중

PPWR은 전자상거래 기업, D2C 브랜드,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EU 시장에 포장재를 출시하는 모든 기업은 규모에 관계없이 규정의 핵심 의무를 준수해야 하며, 소기업에 대한 일반적 면제 조항은 없다. 보고, 설계 요구사항, 등록 등이 포함된다.

특히 국경을 넘는 플랫폼 기반 운영의 경우, 각 회원국의 이행 및 집행 방식 차이에 주의해야 한다. 규정 자체는 EU 전역에서 동일하지만, 벌칙과 집행은 회원국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준수 실패 시 시장 접근 제한, 제품 판매 중단, 공급 파트너십에서의 법적 책임, ESG 등급 하락 등의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확대 생산자책임(EPR)의 전면 도입

PPWR은 확대 생산자책임(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EPR) 개념을 도입하여, 기업이 포장재의 설계, 사용, 폐기 전 생애주기를 책임지도록 한다. 제조업체는 포장재가 쉽게 재활용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수거, 회수, 재활용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동시에 기업은 더 환경친화적인 포장 솔루션을 개발하고 사용할 유인을 받는다.

독일의 경우 2025년 가을부터 포장법(Packaging Act) 개정을 통해 EPR 의무를 구체화할 예정이다. 이는 기업들에게 추가적인 재정 부담과 행정 업무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지속가능한 포장재 개발에 투자하는 기업에게는 경쟁 우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

PPWR은 EU 역내 기업뿐 아니라 EU로 제품을 수출하는 모든 기업에 적용된다. 한국의 식품, 화장품, 전자제품, 생활용품 제조업체와 전자상거래 기업들은 2026년 8월 본격 시행에 앞서 다음 사항을 준비해야 한다.

첫째, 포장재 재활용 가능성 평가와 재설계가 필요하다. 2030년까지 모든 포장재가 재활용 가능해야 하므로, 현재 사용 중인 포장재가 DfR 기준을 충족하는지 검토하고, 필요시 대체재를 찾아야 한다. 다층 필름, 복합 소재 등 재활용이 어려운 포장재는 단일 소재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재생원료 조달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플라스틱 포장재의 재생원료 의무 비율이 점진적으로 높아지므로, 안정적인 재생 플라스틱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재활용 업계와의 협력, 해외 재생원료 수입선 다변화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셋째, PFAS 등 유해물질 함유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특히 식품 포장재의 경우 2026년 8월부터 PFAS 제한이 시행되므로, 현재 사용 중인 원료와 공정에 PFAS가 포함되어 있는지 분석하고, 대체 물질을 찾아야 한다.

넷째, 라벨링 및 추적성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 통일된 재활용 기호, 제조업체 정보, QR 코드 등 새로운 라벨링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도록 포장 디자인과 정보 관리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다섯째, 전자상거래 기업의 경우 EPR 등록 및 보고 의무를 파악해야 한다. EU 각 회원국의 EPR 제도 차이를 이해하고, 필요한 등록 절차와 비용 부담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순환경제로의 전환, 기회이자 도전

PPWR은 EU가 2050년 기후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정책 도구 중 하나다. 2023년 EU에서 발생한 포장 폐기물은 7,970만 톤으로 1인당 177.8kg에 달한다. 2022년보다 8.7kg 감소했지만, 2013년보다는 21.2kg 증가한 수치다. PPWR은 이러한 증가 추세를 반전시키고, 포장 폐기물을 2030년까지 대폭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규정이 야심차고 타이트한 일정을 제시하는 만큼, 산업계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특히 재활용 가능성 및 재생원료 의무 비율 달성을 위한 기술 개발, 인프라 구축, 비용 부담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속가능한 포장재 개발에 투자하는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시장 기회가 열릴 수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도 PPWR의 흐름을 주시하며, 국내 플라스틱 순환경제 체계를 강화하고, EU 시장 진출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EU의 강력한 환경 규제는 결국 글로벌 스탠다드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선제적 대응이 경쟁력 확보의 열쇠가 될 것이다.

[용어 해설]

PPWR: 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 유럽연합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

DfR: Design for Recycling, 재활용을 위한 설계

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확대 생산자책임

DRS: Deposit-Return System, 보증금 환급 제도

PFAS: Per- and Polyfluorinated Alkyl Substances, 과불화화합물

SoC: Substances of Concern, 우려물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