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환경투데이=편집국] "2050년, 대한민국의 온실가스 순배출량은 '0'이 된다." 2021년 9월 공포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은 이 한 문장을 법률로 명문화했다. 선언에 불과했던 탄소중립이 법적 의무가 된 순간이었다.
법 시행 3년을 맞은 지금, 이 법은 얼마나 작동하고 있을까. 2030년까지 8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중간 목표는 달성 가능할까. 본지는 6회에 걸쳐 탄소중립기본법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기후위기, 선언에서 법률로
탄소중립기본법의 출발점은 2020년 10월 28일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날이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멈춰선 상황에서, 기후위기 대응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생존의 문제로 부상했다.
국제사회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2015년 파리협정 이후 EU는 2019년 '유럽 그린딜'을 발표하며 2050 탄소중립을 천명했고,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함께 파리협정에 재가입하며 2050 탄소중립을 약속했다. 중국은 2060년, 일본과 한국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문제는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30년 장기 프로젝트인 탄소중립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려면 법적 근거가 필요했다.
2021년 21대 국회는 1년간 발의된 8개 법안을 통합해 단일안을 만들었다. 여야 합의로 2021년 8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탄소중립기본법은 같은 해 9월 공포돼 2022년 3월 25일부터 시행됐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국가가 됐다.
2050 탄소중립, 2030 감축 40%의 무게
탄소중립기본법의 핵심은 두 개의 숫자다. 2050년 탄소중립(제7조)과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2018년 대비 40% 이상 감축(제8조)이다.
2018년 한국의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727.6백만톤이었다. 40% 감축 목표는 2030년까지 291백만톤을 줄여 436.6백만톤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연평균 감축률로 환산하면 4.17%다.
이 숫자는 결코 가볍지 않다. EU의 연평균 감축률이 1.98%, 미국 2.81%, 일본 3.56%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목표가 얼마나 도전적인지 알 수 있다. 여기에는 한국만의 특수한 사정이 반영돼 있다.
첫째,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26.1%로 주요 선진국 중 최상위권이다.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비중이 높아 감축이 쉽지 않다.
둘째, 배출정점 이후 탄소중립까지의 기간이 짧다. EU가 배출정점 이후 탄소중립까지 71년의 시간을 가진 반면, 한국은 단 32년밖에 없다.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한국은 사실상 지금부터 급격한 감축을 시작해야 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2030 NDC 40% 목표는 국제사회의 요구와 국내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면서도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모든 부문에서 전례 없는 속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제도적 무기들
탄소중립기본법은 목표만 제시한 것이 아니다. 목표 달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함께 마련했다.
기후대응기금은 그 중심에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 유상할당 수입 등을 재원으로 조성되는 이 기금은 ▲온실가스 감축 기반 조성 ▲산업·노동·지역경제 전환 지원 ▲취약계층 지원 ▲녹색기술 R&D ▲기후금융 지원 등에 활용된다.
기후변화영향평가제도도 주목할 만하다. 국가 주요 계획과 개발사업을 추진할 때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도록 한 제도다. 환경영향평가에 기후위기 관점을 추가한 셈이다.
제도 시행 초기인 만큼 아직 평가 대상과 기준이 구체화되는 과정이다. 환경단체들은 "평가가 형식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엄격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온실가스감축인지예산제도는 국가 예산 편성 때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점검하는 시스템이다. 모든 예산 사업이 탄소중립 목표와 정합성을 가지도록 하려는 취지다.
이 밖에도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대통령 직속) ▲국가 및 지자체 기본계획 수립 의무화 ▲탄소중립도시 지정 ▲녹색제품 구매 촉진 ▲탄소중립 포인트제 등 다양한 제도가 법에 담겼다.
주요국과 비교해보니
한국보다 앞서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국가들은 어떤 접근을 했을까.
영국은 2008년 세계 최초로 기후변화법(Climate Change Act)을 제정했다. 당시 2050년까지 1990년 대비 80% 감축을 목표로 했으나, 2019년 이를 순배출량 '0'으로 강화했다. 영국 법의 특징은 5년마다 탄소예산(Carbon Budget)을 설정해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시스템이다. 독립적인 감시기구인 기후변화위원회(CCC)가 정부 정책을 평가하고 권고한다.
독일은 2019년 기후보호법(Climate Protection Act)을 제정하고, 2021년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목표를 대폭 강화했다. 2030년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65%로 높이고, 탄소중립 시점도 2050년에서 2045년으로 앞당겼다. 부문별 감축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목표 미달 시 장관이 3개월 내 추가 대책을 제출하도록 한 책임 메커니즘이 특징이다.
프랑스는 2019년 에너지·기후법을 통해 2050 탄소중립을 법제화했다. 2030년까지 화석연료 소비를 40% 감축하고, 2022년까지 석탄발전을 전면 중단한다는 구체적 목표를 담았다. 최고기후위원회(High Council for Climate)가 매년 정부 정책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발간한다.
일본은 2021년 지구온난화대책추진법을 개정해 2050 탄소중립을 명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감축 경로나 목표 달성 수단에 대한 법적 의무 조항이 약해 실효성 논란이 있다.
이들 국가와 비교할 때 한국 탄소중립기본법의 강점은 2030년 중간 목표를 법률에 명시했다는 점이다. 영국처럼 단계별 탄소예산 개념은 없지만, NDC 40% 목표를 법에 담아 정책 일관성을 확보했다.
반면 약점도 있다. 독립적인 감시·평가 기구의 권한이 약하고, 목표 미달 시 책임을 묻는 메커니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있지만, 영국 CCC나 프랑스 최고기후위원회와 달리 정부 정책을 강력히 견제하는 독립기구는 아니다.
"법은 출발점, 이제 실행이 관건"
기후솔루션 이지언 연구원은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으로 한국은 법적 기반을 갖췄지만, 법의 실효성은 결국 이행에 달려 있다"며 "특히 2030년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만큼, 부문별 감축 이행을 엄격히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윤순진 교수는 "탄소중립기본법이 여전히 '녹색성장' 프레임을 유지하고 있어 경제성장과 탄소중립의 근본적 긴장을 해소하지 못했다"며 "성장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면 진정한 전환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환경부는 법 시행 이후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부문별·연도별 감축 로드맵을 구체화했다. 하지만 계획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작동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법 제정 3년, 이제 본격적인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음 회에서는 2030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부문별 이행 현황과 실제 감축 실적을 심층 분석한다.
[용어 설명]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파리협정에 따라 각국이 자발적으로 정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5년마다 상향 조정하도록 되어 있다.
순배출량: 총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산림 등 흡수원의 흡수량과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등 제거량을 뺀 값. 탄소중립은 이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다.
배출권 거래제: 정부가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배출권)을 할당하고, 기업들이 남거나 부족한 배출권을 시장에서 거래하도록 하는 제도. 한국은 2015년부터 시행 중이다.